9월 5일 토요일. 하늘은 조금 흐렸지만,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아직 여름, 가을이 오는 길목에서,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그리고 20년의 역사를 함께 했다는 만년필을 졸업 선물로 받았다. 짧은 메모와 함께.
이 만년필로 중대한 사인들을 하고, 메모를 하고, 소중한 순간들을 함께 했다고. 버건디색 잉크는 아마 구하기 쉽지 않을 거라는 말과 함께. 사실은 그래서 샀다고 하며. 참으로 선생님다운, 낭만적인 선물.
시덥잖은, 사사로운, 소소한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헤어졌다.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코끝이 시큰한게, 아직도 어른이 되어가는 중인듯하다.
2020. 9. 5.
운명을 거스르는 선택
대학원에 가는 게, 특히 박사 진학에 대한 후회, 비탄 같은 것들이 밈으로 많이 쓰이잖아요. 대표적으로 이런 것 말이죠.
그런데도 그때는 왜 그랬을까요? 대단한 이유는 없었지만 전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에 진학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면접장으로 향하던 길에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렸습니다.
이때 면접을 포기했어야 했을까요? 인생이란 참 알쏭달쏭합니다 
어찌저찌 엘리베이터를 탈출하고 면접장으로 향했습니다. 1시간 이상 지체되었지만 면접 순서가 마지막이라 다행(?)이었죠. 면접을 무사히 마치고 합격했습니다. 친구들은 말합니다. 운명을 거스른 선택을 했다고요. 하지만 뭐, 지나버렸으니까요. 어쩌면 엘리베이터에 갇혔다가 탈출하여 면접을 보고 합격하는, 퍽 낭만적인 이야기가 제 운명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Quick and Dirty: 완벽한 준비는 영원히 되지 않는다
제가 랩에 처음 들어왔을 때나 선생님이 학부 수업을 하면서 자주 하시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서울대 학생들은 너무 엄숙하다고. 당신은 그 엄숙함을 좀 깨어주고 싶다고.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기가 어려운 것 같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바로 그 엄숙한 학생 중 한 명이었을 겁니다. 정도의 차이는 조금 있을지라도...
연구실에서 미팅을 위해 중앙 테이블에 앉으면 바로 보이던, 아주 오랫동안 붙어있던 규칙들. Quick and Dirty가 가장 먼저 붙었던 규칙입니다. 때때로 하나씩 추가되어 서로 다른 글씨체, 종이의 질감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하네요.
엄숙함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라 아마 완벽주의의 다른 말이 아닐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반화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저를 포함해서 제가 겪거나 본 서울대 학생들은 아무래도 어렸을 때부터 대체로 우수하게 잘하는 모습만을 보여왔기 때문에 본인의 기준에 미치지 않는 것들은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본인의 기준에 도달할 때까지 미완성의 무언가를 공개해서 피드백 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에 본인의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었죠. 자연히 완성까지 시간이 걸리고, 마감 없이 완성됐다는 상태에 제대로 도달한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발표나 토론에서도 역시 온전한 로직이 세워지지 않거나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입을 잘 떼지 않습니다. 본인조차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걸 그대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이런 엄숙주의 성향은 결국에는 우수한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장점도 있지만,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중간에 잘못되더라도 알아차리기가 어렵고,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내용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것에 주저하게 됩니다. 그리고 내 생각보다 사실은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배제하게 되는 것이기도 하죠.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그런 것들은 와장창하고 모두 부서졌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지는 못했지만요. 연구실에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는 물리적으로 저런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프로젝트 회의를 했고, 잠도 자지 못한 채로 준비해도 결국 제가 생각하는 기준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가 어려웠습니다. 중간까지밖에 작업하지 못한 결과물을 모두에게 보여야했고, 그럴 때마다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쩌다가 생각한대로 완성해간 작업물조차 매일매일 180도 바뀌는 방향에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게 일상다반사였죠. 무언가 온전한 로직이 서지도 않은 것 같은데 실행을 해야하는 일이 너무 자주 생겼습니다. 제 성격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었죠. 그럴 때마다 선생님은 (그때쯤에 한창 유행하던) Lean method, Agile process 같은 책을 읽으라고 숙제로 던져주곤 했습니다.
어라?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하더라구요. 어떻게든 일은 되었습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보완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타이밍이 되었습니다. 원래 이런건가? 싶은 생각에 의문을 품기도 전에 또 다음 단계를 준비하고... 매일매일이 변화의 연속이고,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작업물을 공개하며 피드백을 받고, 또 고치고... 그런 일을 반복하다보니 미완성의 결과물을 공개할 때의 고통에 무뎌졌습니다. 아니, 사실 좀 편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한 사이클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그런 결과물들이 그 전에 했던 것들보다도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어느덧 저는 완성되지 않은 초기 작업물을 공유해서 피드백을 받고, 일단 실행해보고 문제점을 찾은 후 고치는 프로세스에 젖어들게 되었습니다.
제 드랍박스에는 완성 이전의 얼개(outline) 파일만 한무더기씩 발견됩니다.
이제 저는 준비가 되었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나의 마음에 드는 준비라는 건 없습니다. 제 기준은 제 능력보다도 너무 높고, 그렇게 하다간 평생 준비가 될 순간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이제는 무엇을 하더라도 시작점에서, 어느 중간 지점에서, 거의 다와가서, 완성하고 나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상태를 보여주고 의견을 묻습니다. 완벽한 계획이라는 것은 없더군요.
어떤 팀과 10개월을 넘게 사용자조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필드에 단 한 번 나간 후에 우리는 그 계획이 잘못되었다는 걸 바로 알았습니다. 고치는 데에는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시간과 노력을 많이 쏟는다는 게 반드시 계획의 철저함과 적절함에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윤곽만 잡히면 일단 실행해봅니다. 그리고 문제점을 찾습니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고민하는 것보다 그게 더 빠르다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으니까요.
위임(delegation), 신뢰(trust), 관리(manage)
제가 대학원에 와서 가장 많이 바뀐 것이 바로 이 부분이라고 확신합니다. 학부 때 사실 저는 팀플을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저 역시도 소위 말하는 하드캐리 하는 조장 역할을 자주 맡았기 때문이었죠. 나눠서 일하면 효율도 떨어지고, 원하는 퀄리티만큼 결과가 잘 도출되지 않는다는 것이 저의 입장이었습니다.
팀원들에게 주간 목표와 할일을 논의하는 메일입니다. 대학원의 프로젝트 팀은 수시로 변동됩니다. 인턴이 오기도 하고, 학위논문 쓰느라 빠지게 되기도 하고, 신입생도 들어오고... 저는 3년간 저런 메일을 매주 모든 팀원에게 보냈습니다.
대학원에 와서도 사람이 갑자기 달라질 수는 없었습니다. 석사 3학기차, 어떤 프로젝트—사실은 지금의 학위를 만들어준—의 Project Manager(PM)를 맡게 되었습니다. 다른 두 명의 석사 후배와 함께 말이죠. 저는 그때 제가 조장을 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고, 모든 결과물이 내손에서 나가서 내손으로 들어와야 하는. 그래서 일을 나누어 자료를 조사하게 한 후에, 그걸 제게 다시 보내도록 했습니다. 자료를 조사하는 활동은 약간은 노동집약적인 부분이 있었지만, 논리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사실 그렇게까지 지적인 활동은 아닙니다. 그러니 아마도 부담은 크지 않겠죠. 다만 그 자료를 전부 받아 제가 혼자서 취합해서 만드는 과정에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았습니다. 그 당시 저는 그게 팀원들에게 일을 떠넘기는 리더로 욕을 먹지 않고, 어느 정도의 퀄리티를 갖춘 결과물을 내보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사실 신뢰의 문제였다는 걸 깨닫게 된 건 조금 후의 일입니다.
몇 차례의 미팅을 가지며, 프로젝트의 PI인 지도교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거 누가 만든거야? 여기 이 내용은 어떻게 나온거야? 이거 네가 그냥 다 만들어온거야? 그럴 때마다 저는 아뇨, 다같이 조사해서 취합한거죠,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판도 칭찬도 그냥 모두가 공동으로 나눠갖는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미팅에서 또다시 같은 일이 벌어졌고, 선생님은 저에게 선언했습니다.
다음 주 미팅에는 각자 준비해서 와. 유진(가명)이는 A 조사하고, 지수(가명)는 B 조사해서 와. 그리고 유정이는 아무것도 하지 말고 와.
저는 반발했지만, 선생님이 너무 강경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략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두 명의 후배가 다음 미팅에서의 발표를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코칭하기로요. 그런데 그 둘에게 각자의 역할과 내용을 주어주고, 본인의 이름으로 발표할 수 있도록 하고, 몇 번의 세밀한 코칭을 거치니, 제 생각 이상으로 잘 해내더군요. 물론 상식적인 결과일 수 있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사실 그때까지 저는 그들을 완전히 신뢰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겁니다. 내 동료들은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하고, 책임감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신뢰가 없으니, 온전한 위임이 이뤄지지 못했고, 그러니 더더욱 자신의 능력과 책임을 보여줄 필요가 없었던 거죠.
생각보다 그게 충격이었고, 그후로 저는 많은 걸 배우게 되었습니다. PM 혹은 리더가 관리자로서 해야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요. 제가 생각하는 리더의 업무적인 역할은 네 가지 정도입니다.
•
팀원들에게 공동의 목표를 알려주기
•
공동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하위목표를 분배하고 위임하기
•
팀원 각각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정신적으로, 실질적으로 코칭하기
•
팀의 거시적인 리스크(일정, 진행 등)를 파악하고 관리하기
저 네 가지의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는 신뢰가 필요합니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만, 저는 이제 그 어려운 일이 사실은 가장 보상이 크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믿음이 나에 대한 자신감에서 온다는 것도 알죠. 누군가가 실수해도, 해내지 못해도 내가 뒤에서 그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상대방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할 것은, 나의 신뢰에 대한 대가를 당연하게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저런 일들이 비가시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었습니다. 팀원 각각의 성장이 나의 훌륭한 리딩으로 이뤄졌는지, 그들의 능력으로 이뤄졌는지, 혹은 그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는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프로젝트의 목표와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 역시도 무형의 일입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이 일을 하는 게 의미가 있는걸까?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누가 알긴 할까? 그런 불안감이 떠오르는 일이 잦았습니다. 그러나 내게 맡겨진 일이었고, 나를 믿고 계속해나가는 수밖에 없었죠. 물론 솔직히 지도교수의 전폭적인 지지도 한몫했고요. 그리고 시간이 많은 것을 해결해주었습니다.
이 팀에서 프로젝트를 함께하며 성장한 팀원들/후배들이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가 PM이 되어 고충을 나누러 오기도 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고, 함께 일했던 교수님들이 따뜻한 말씀을 해주시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있을 때 불러주시기도 하고... 돌이켜보면 그런 시간들 속에서 저 스스로도 관리, 신뢰, 위임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확신하게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감사하는 마음, 그리고 감사하는 말
대학원에 와서 협업이 무엇인지를 배우고, 많은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 아주 귀중한 소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걸 제게 가르쳐준 사람들은 다름아닌 제 동료와 후배들이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야 누군들 갖지 않겠냐마는, 감사하는 말의 힘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된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저는 3년간 어떤 프로젝트의 PM을 하면서, 매주 일요일 밤에 다음주를 준비할 수 있도록 대략의 할일과 일정을 안내하는 메일을 3년간 꼬박꼬박 보냈습니다. 저 스스로도 정리하고, 겸사겸사 팀원들한테 안내도 상세히 해두면 일할 때 다시 한 번 물어보지 않고 펼쳐보고 가늠할 수 있을 것이고, 다른 팀원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아는데도 도움이 될테니까요. 특별히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매주 주기적으로 상세하게 플랜을 해서 투명하게 공유하는 게 어쨌든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PM을 맡았던 프로젝트의 팀원들은 석사연구원들이었기 때문에, 프로젝트 참여 기간은 대략 한두학기 정도였습니다. 평균적으로 한 학기? 그래서 이 메일을 받는 사람은 항상 바뀌곤 했는데요. 2014년 후반부부터 2016년 후반부에 이르기까지 한 번도 이 메일에 답장을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럴 거라 기대하지도 않았고, 다른 그 누구도 이 메일이 어떤 답장이 필요한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기 때문이겠죠? 근데 어느날, 갑자기… 감사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때, 정말 너무 기뻤어요. 그전까지는 자각하지 못했는데, 저 메일을 받고나니 비로소 뭔가 온전히 누군가 나의 소소하지만 대단한 노력을 알아주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기뻤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한 마디를 보태 고마움을 표현하는 후배에게 저 역시 고마웠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위를 예민하게 살피고 작은 것에도 감사함을 느끼게 되면, 지나치지 말고 꼭 표현하자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했던 분당서울대병원의 김정훈 교수님. 감사한 일이 많아 어느날 답장해주신 메일에 감사함을 담아 보냈습니다.
함께 제안서도 쓰고 수업도 들었던 이원종 선생님께 보냈던 이메일. 사소한 일들 뿐이지만 조금쯤은 뿌듯하셨을까요?
저의 공동 지도교수셨던 서봉원 선생님께 보냈던 이메일. 선생님과 저는 또 참으로 깊은 인연이라 이렇게 몇 자로 적어서는 다 표현할 길이 없지만요.
개인적으로 박사학위 졸업논문에서 제가 제일 잘 쓴 부분, 누구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은 섹션은 Acknowledgement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감사하는 마음으로, 진심으로 쓴 이야기거든요. 마치 시상식에서 작은 상을 타고도 감사할 분들이 너무 많아 시간을 초과한 수상자처럼 저 역시도 acknowledgement에 감사할 수 있는 모든 분들께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
제가 대학원에서, 저의 지도교수에게서 가장 잘 배운 건 아마도 용기를 내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아닐까 합니다. 전 원래 겁이 많았거든요. 도전 같은 단어는 저에게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두려움이 대학원 생활을 거치면서 많이 깨졌습니다. 그건 어떻게 증명할 수도 없는 일이고 저만이 오롯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저는 확실히 바뀌었습니다. 두려움에 맞서서, 어쩌면 때로는 위험할 수도 있는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용기가 이제는 생겼거든요.
제 지도교수님 취미(?)는 세일링. 덕분에 저도 함께 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내가 조금쯤은 용기있는 사람이 되었구나, 하는 걸 새삼 느끼고 돌아왔습니다.
서두의 심슨 밈처럼, 사람들은 대학원을 잘못된 선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농담이지만, 그만큼 험하고 힘든데 보상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는 현실을 이야기한 것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저는 다시 돌아간대도, 대학원에 갈 거예요. 그리고 그게 유엑스랩이어도 또 여전히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많이 성장했고 더 나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에 대한 확신도 생겼고, 중심도 생겼습니다. 많은 것들이 변했고, 저는 그 변화를 사랑합니다.